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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룬샷(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 흐름출판
룬샷은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사람들이 그 가치를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뜻한다. 저자가 룬샷을 아기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퍽 와닿았다. 아기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존재로서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보채기도 심하고 예측할 수 없다. 밤에는 우리를 잠 못 들게 한다. 아기는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가진 가치와 상관없이 조롱의 대상인 룬샷도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빛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혁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의 초기 모습은 대게 룬샷이다. 혁신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급진적일 때가 많고, 등장하는 시점에는 그것이 무엇이 될지 알기 어렵다. 혁신인 것과 아닌 것을 결과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 룬샷은 애초에 회의론으로 가득한 마구간 안에서 태어날 운명을 가졌다.
이 책은 룬샷을 잘 보호하고 육성하여 혁신을 이뤄낸 사례와 룬샷을 육성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례를 나열하며 룬샷의 가치를 조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룬샷을 따라야 하는가? 그럴 리가.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건 진리에 가까운 말일지도. 저자는 룬샷을 찾는 데에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조직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사례를 보여주며 ‘균형’을 잡는다.
룬샷을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을 잘 설계하되 지나침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어디에서 본듯한 진부한 결론이 이 책의 주제다. 그럼에도 물리학자 출신인 저자가 물리 이론에 빗대어 풀어가는 경영학은 전개가 되게 신선했다.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서 혁신이 발생하기 어려운 이유를 방정식으로 풀어낼 때는 지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저자와 나의 지식수준 차가 큰 건 어쩔 수 없는지, 낯선 용어가 자주 등장해서 완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장의 근거로 많은 사례를 펼쳐놓는데, 등장 인물의 이름마저 낯설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가더라. 앞의 맥락이 잘 생각이 나질 않아서 같은 페이지를 여러 번 읽기를 반복하느라 이 책을 3주나 잡고 있었네?
대단한 통찰을 보았지만, 선뜻 다시 읽을 용기가 나지는 않는, 그런 책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