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을 수 있을까?

 몸에 익지 않은 코딩 지식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엉겨 붙은 코드의 정글,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슈, 당장 내일이라도 찾아올 것만 같은 마감일이 주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코딩을 잘하려면 지식을 단순히 학습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습득한 지식이 몸에 밸 때까지 꾸준히 수련해야 한다. 말은 쉽다.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쉬운 길을 가고 싶은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다. 입은 빠르지만 머리는 굳어있고 손은 더디다. 그렇게 부채는 쌓인다. 적당한 기술 부채는 빠른 개발에 필수라지만, 불필요한 부채를 만들어놓고 둘러대는 핑계는 모두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던가. 문제를 애초에 몰랐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그저 쌓아둔 문제는 다시 곱씹어 볼 일이다.

 5f468e98

 그래서 요 며칠은 알고 있는 지식이 코드에 잘 묻어날 수 있게 조금 느리게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테스트 작성, 리팩터링, 설계 변경, 구현까지. 애쓰고 있지만 먼 길을 돌아가는 느낌은 여전히 날 괴롭힌다. 쉬워 보일 뿐(?)인 길로 달려가고 싶어 안달 난 나 자신을 끊임없이 타이르는 과정은 마치 부모님과 하는 대화처럼 답답하다.

"우리는 천천히 걸을 수 있을까?"

 필요하다는 걸 알고서 행하는 내가 이렇게 애써야 하는데,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이 느껴야 하는 부담의 깊이는 얼마나 되려나. 나, 그리고 우리는, 언제쯤 숨 쉬듯 천천히 걸을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