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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 것 목록에 목표가 없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 일이 끝나면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를 먼저 적어두는 편이다. 그 목록을 팀원들과 맞춰보고 일을 시작한다. “다 끝났다”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몇 번 겪고 나서 생긴 습관이다.
이번에 맡은 건 다른 팀의 제품을 우리 팀이 돕는 일이다. 그런데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1차 목표부터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찾아내기”로 잡았다.
남길 것으로는 두 개를 적었다. 상대 팀과 함께 정한 작업 방식, 그리고 상대 팀과 함께 정한 우리 팀의 역할 범위.
목표를 찾는 게 목표인데, 목록에 목표가 없다
며칠 뒤에 목록을 다시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두 줄을 다 채워도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채로 남는다. 1차 목표의 답이 목록에 없다. 적을 땐 꽤 그럴듯해 보였다(그래서 더 별로다).
문제는 이 목록이 “다 끝났다”의 기준이라는 점이다. 기준에서 1차 목표가 빠져 있으면 두 줄을 채우고 끝났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정작 찾아내야 했던 건 못 찾은 채로.
끝난 뒤에 하는 회고도 같은 목록을 본다. 대볼 게 그것뿐이라 목록이 틀려 있으면 회고는 느낌 이야기가 된다. 회고 연구 46개를 묶은 메타분석에서는 제대로 진행한 회고 모임이 이후 성과를 평균 20~25% 높였다. 다만 아무 회고나 그런 건 아니었다. 순서가 정해져 있고, 진행을 맡은 사람이 있고, 목적이 분명할 때 효과가 더 컸다고 한다.
회고의 질은 프로젝트가 끝난 뒤가 아니라 시작할 때 이미 정해지는 것 아닐까?
합의는 흐릿할수록 쉽다
왜 이런 목록을 적었나 되짚어보니, 두 항목이 둘 다 ‘합의’다. 합의를 적어두면 뭔가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둘 다 상대 팀이 있어야 성립한다. 우리 팀 혼자서는 끝낼 수 없다.
그러면 끝났는지를 뭘로 판단하나? 우리가 만든 문서인가, 상대가 바꾼 행동인가. 문서 쪽이 훨씬 쉬워서 자연스럽게 그쪽을 고르게 된다.
“합의를 끝내는 것”이 목표가 되면 서로 다르게 읽을 수 있는 문장에 동의하고 끝났다고 말하게 된다. 해석이 갈린다는 사실은 일을 시작한 다음에야 드러난다. 목표가 눈에 보이는 산출물로 바뀌면 사람은 그걸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을 고른다. 합의서를 빨리 만들려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문장을 쓰면 된다.
합의했다는 사실 하나로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근거가 많다는 말과 안전하다는 말은 다르다
그럼 남길 것을 미리 정해두는 방법 자체가 문제인가 싶어 찾아봤다. 좋다는 근거는 어렵지 않게 나온다. 팀 연구 65개를 묶은 메타분석에서는 팀원들이 비슷한 이해를 갖고 있을수록 팀 성과가 높았다. 경영대학원 32개 팀이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 연구에서는 목적 문서와 실행 계획을 둘 다 잘 만든 팀이 가장 오래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그런데 반대쪽 연구도 그만큼 쌓여 있었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면 목표 안쪽만 보게 되고, 목표에 없는 일은 방치되고, 위험한 선택이 늘고, 거짓 보고가 늘고,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줄어든다. 다섯 가지가 따로 노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목표가 정해지면 사람은 목표에 필요한 것만 보고 나머지는 시야에서 뺀다. 실험으로 확인된 것도 있다. 목표를 못 채운 사람이 자기 성적을 부풀려 적을 확률이 더 높았고, 아주 조금 못 미쳤을 때 가장 심했다.
내가 겪은 것도 저 목록 안에 있었다. 목표에 없는 일은 방치된다는 것. 남길 것 두 줄을 적는 순간 1차 목표는 그 밖으로 나갔다.
많이 검증된 방법일수록 부작용을 다룬 연구도 같이 늘어난다.
무엇을 미리 확정할지는 일의 종류가 정한다
숫자 목표는 일이 단순할수록 잘 통하고 복잡할수록 효과가 약해진다. 방법을 이미 아는 일에서는 목표가 노력의 양을 늘리지만, 방법을 모르는 일에서는 노력을 늘려도 방법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고 복잡한 일에서는 배움을 목표로 둔 쪽이 숫자를 목표로 둔 쪽보다 결과가 좋았다. 참가자 189명이 제품을 개발한 실험에서는 차이가 더 갈렸다. 배움을 목표로 한 쪽은 여러 방법을 떠올려 더 새로운 결과를 냈고, 숫자를 목표로 한 쪽은 빨리 하나로 정해서 더 쓸모 있는 결과를 냈다.
지금 새로움이 필요한지 쓸모가 필요한지를 먼저 판단해야 목표의 종류를 고를 수 있다. 우리 일은 뭘 해야 할지부터 찾는 단계다. 새로움 쪽에 가깝다.
그런데 1차 목표는 “찾아내기”로 잡아놓고, 남길 것은 이미 다 정해진 일처럼 적었다. 남을 돕는 일이니 할 일은 분명한 쪽이겠지 하고 손이 먼저 움직인 것 같다.
무엇을 만들지 이미 정해진 일에서는 결과물과 확인 기준을 자세히 정할수록 좋다. 아직 찾는 중인 일에서는 “끝났을 때 무엇을 알게 되는가”와 “언제 그만둘 것인가”를 정하고 결과물의 모양은 열어둬야 할 것 같다.
세 줄을 더 적었다
끝났을 때 무엇을 알게 되는가, 하지 않을 일, 그리고 다시 볼 시점.
첫 줄이 비어 있던 1차 목표의 자리를 대신한다. 찾아낸 목표를 지금 적을 수는 없으니(적을 수 있었으면 이 프로젝트를 안 했겠지) 무엇을 알아낸 상태로 끝날지를 적었다.
할 일만 적으면 서로 다르게 이해한 부분이 그대로 숨는다. 하지 않을 일을 적으면 그 자리에서 의견 차이가 나온다(이건 적어보니 바로 효과가 있었다).
다시 볼 시점을 미리 정해두는 건 결정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공개적으로 한 합의는 팀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되돌리는 비용도 같이 올린다. 경영대 학생 240명이 투자 결정 역할극을 한 오래된 실험에서는 처음 결정을 자기가 내린 사람일수록 결과가 나쁘게 나와도 돈을 더 많이 넣었다.
목록은 다섯 줄이 됐다. 이 일이 끝나고 회고를 할 때 대볼 게 이 다섯 줄이다. 맞게 적었는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레퍼런스
- DeChurch & Mesmer-Magnus (2010) 이해를 공유한 팀일수록 성과가 높음. 관계만 본 연구다.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 Mathieu & Rapp (2009) 목적 문서와 실행 계획을 둘 다 갖춘 팀이 성적을 오래 유지. 성과를 직접 올린 쪽은 실행 계획이고, 목적 문서는 함께 있을 때 효과가 났다.
- Ordóñez 외 (2009) 목표 설정의 부작용 목록. 실험 논문이 아니라 문제 제기 글이고, 같은 학술지에 반박 글도 실렸다.
- Schweitzer, Ordóñez & Douma (2004) 목표를 못 채우면 성적을 부풀려 보고. 대학생 대상 실험실 과제다.
- Seijts & Latham (2005) 새롭고 복잡한 일에서는 배움 목표가 유리. 실무자를 위해 정리한 글에 가깝다.
- Seijts & Latham (2012) 배움 목표는 새로움, 숫자 목표는 쓸모. 참가자 189명 실험이고 요약문 기준으로 적었다.
- Locke & Latham (2002) 목표의 효과는 일의 복잡성과 역량에 따라 달라짐. 목표 연구 35년을 돌아본 글이다.
- Tannenbaum & Cerasoli (2013) 제대로 한 회고는 이후 성과를 20~25% 높임. 군대, 병원, 항공 분야 연구가 많이 섞여 있다.
- Staw (1976) 자기가 내린 결정일수록 나쁜 결과에도 더 투입. 1976년 역할극 실험이라 지금 회사 상황에 그대로 옮기기에는 거리가 있다.